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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영희 기자
  • 기획
  • 입력 2014.12.09 13:51

감정 앗아가고 우울증 돌려주는 ‘블랙컨슈머’

 

『 은행 콜센터 여직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오늘도 넓은 사무실에 빽빽하게 쳐진 칸막이 사이로 헤드셋을 끼고 일한다. 쉴 틈도 없이 밀려드는 고객들의 전화에 친절히 응대해야 하며, 불특정 고객의 일상적인 폭언과 성희롱은 참고 넘어가기 일쑤다.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휴식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엄격한 근태관리에 매일매일이 힘들다. A씨는 반복되는 고객들의 폭언과 욕설에 병들어가고 있었다…』

12월 2일 국회 김기준·한명숙·김기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및 금융경제연구소는 '금융부문 감정노동 및 블랙컨슈머 대처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블랙컨슈머’란,(Black Consumer)란, 피해 사실을 거짓으로 꾸며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즉,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는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란 뜻의 컨슈머(Consumer)를 합친 신조어이다. 의도적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기업체에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는가 하면,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지칭한다.

이번에 열린 세미나는 주로 금융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블랙컨슈머에 의한 감정노동으로 발생하는 건강상의 장해 인정 기준과 대책을 마련하고, 제도적 보완 및 법제화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토론에 앞선 인사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학영 의원은 “감정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사례가 더이상 나타나지 없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지나친 감성 표현도 때론 범죄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인격 모독이고 침해라는 인식을 광범위하게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만성적 스트레스, 제도화 시급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인아 연구원은 '한국 노동자 정신질병에 대한 직업병 인정기준과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산재보상보험법’ 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산재보상보험법이 시행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근로자들이 ‘업무로 인해 일어난 정신질환’을 신청한 건수는 2012년의 경우 75건이나, 그 중 정신질환으로 승인된 것은 32건에 불과했다“고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근로자의 정신질환 신청이 많음에도 승인 건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 ‘스트레스 강도가 약하거나 직무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정신질환 신청자가 경험하는 주요 스트레스는 직장 내 폭력 등의 내부 문제로 인한 ‘급성 충격적 사건’이 가장 많았으며, 그 뒤로는 업무의 질과 책임, 재량권 변화, 근로시간 및 업무량 변화 순으로 나타났다”며, “근로자들은 급성 충격적 사건만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또한 인권이나 자존감을 떨어뜨릴만큼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연구원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만성적 스트레스’를 제도화한 국가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정신질병 인정 기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목록에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ILO(국제노동기구)의 직업병 목록에서 제시하고 있는 유일한 정신질환으로, 덴마크와 대만이 이 장애를 인정기준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정신행동장애’로 정의하나, 실제 인정은 주요우울장애, 적응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정신질병 인정기준에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병 중 유해요인과 질병의 원인적 연관성이 확인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신설되었다고 발표했다. 이어 “감정노동을 진단할 수 있는 명백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며,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감정노동자의 1/3은 심리상담...
기업 내부의 변화 필요

노동환경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은 ‘감정노동 현황과 보호 과제’를 주제로 두 번제 발제에 나섰다.

한 연구원은 “감정노동이란,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이다. 지속적인 웃음이나 미소, 표정을 감추는 무표정, 부당한 상황에도 화낼 수 없는 상태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며, “특히, 고객을 대면하는 서비스직에서 많이 발생하며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 '금융부문 감정노동 및 블랙컨슈머 대처방안' 세미나에 참여한 노동환경연구소 한인임 연구원이 ‘감정노동 현황과 보호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감정노동자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정부는 약 56만~740만 명 가량 된다고 보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전체 임금 근로자의 31~41%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감정노동자의 비중은 전체 업종 중 서비스직 종사자의 비율이 1980년대에 37%였으나, 2007년에는 무려 66.7%에 달하여 급격히 증가한 추세를 보였다. 또한 감정노동이 발생하는 직종은 보험판매직, 창구, 콜센터에서 일하는 금융업 종사자들이 주로 해당되며 민원인 및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무원과 간호원, 간병인, 원무과 직원 등 다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연구원은 감정노동의 부정적 효과로 “자아가 이중화되는 감정적 부조화(不造化), 낮은 직무만족도와 높은 직무 스트레스와 우울증, 공황장애, 자살 등의 정신적 고갈 상태를 보인다”고 말하며, 감정노동은 고객을 대면하며 생기는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적지 않은 금융노동자들이 우울 증상을 경험했으며, 심리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 창구, 콜센터 업계에 종사하는 5942명을 대상으로 한 2011년 금융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법원 노동자가 875명인 29.1%, 사무금융 노동자는 1,495명인 26.5%, 서비스 노동자는 721명인 26.6%가 ‘심리 상담이 필요한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한 연구원은 감정노동으로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고객 앞에서 친절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상급자로 인한 업무적 부담과 고객으로부터의 폭언과 폭행이 더해져, 고객이 부당한 행동을 해도 부당함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노동이 극대화 되어 신체적‧정신적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감정노동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한 연구원은 “근로기준법 제 8조 [폭행의 금지] 조항에 사용자는 사고의 발생이나 그 밖의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에게 폭행을 하지 못한다“ 고 되어 있으나 고객, 또는 상급자나 동료로부터 가해지는 폭언 및 폭행, 인격 무시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연구원은 개선대책으로 ‘이유있는 컴플레인’ 집단에 대해 회사측에서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비스에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인 이른바 ‘컴플레인’ 집단을 조사해 보니, 상위 10% ‘안하무인형’과 하위 10%인 ‘사회소외형’, 그리고 나머지 80%는 ‘이유있는 컴플레인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80%를 차지하는 다수의 고객들이 ‘이유있는’ 컴플레인을 거는 주된 이유는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당 업계 종사자들 또한 고객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회사로부터 교육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한 연구원은 ‘기업 내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업은 고객에게 ‘적합한 서비스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객관화된 매뉴얼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과도한 ‘친절교육’, ‘서비스 교육’, ‘모니터링 제도’ , ‘인사고과 반영 및 징계의 근거’, ‘조직 문화적인 분위기’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업주의 포괄적인 고용자 건강노동 보호 캠페인이 필요하며, 고객에게 이를 꾸준히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명숙 의원실에서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건강장애 예방 사업주 의무‘ 에 대해 입법 발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컨슈머’ 많이 겪는 은행 근무자들
핵심성과지표(KPI) 고객만족도 폐지해야

지난 8월 금융경제연구소는 지난 10월 20일부터 11월 8일까지 3주 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소속 지부 중 콜센터와 영업창구 근무자 3,776명을 대상으로 인적속성, 근로환경, 감정노동, 건강상태, 직무스트레스 등의 내용을 담은 설문조사(SPSS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1.6%p)를 실시했다.

‘은행권 감정노동 실태조사와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한 금융경제연구소 정혜자 연구위원은
“은행업은 감정노동을 많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업종에 속하며, 민원발생 건 수중 7~10%가 블랙컨슈머로 추정될 정도로 블랙컨슈머의 발생빈도도 높은 업종”이라고 밝혔다. 
은행업 종사자들은 대체적으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비롯되는 감정노동을 기본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여기에 블랙컨슈머의 빈번한 등장으로 감정노동의 유해인자에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은 대부분 장시간 일하고, 휴식시간은 짧으며, 직장 내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의 하루 평균근로시간은 10시간 33분으로, 일주일 평균 근로시간은 50시간 12분이었다.  휴식시간은 콜센터 종사자의 경우, 대체로 15분 미만 또는 30분 미만의 휴게시간을 가진다는 응답 비율이 57% 이상이었다. 직장 내 스트레스의 원인은 ‘성과주의 조직문화’가 77.8%, 악성민원 응대가 75.6%, 암행감찰 및 고객만족도 조사가 45.9% 순이었다. 

또한 근무자들은 대다수가 질병을 앓고 있거나 겪었다고 응답했다. 질병으로 진단받은 경험이 없는 경우는 25.2%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질병은 ‘소화장애’인 52.8%였으며, 여성 종사자 중 상당수는 생리불순을 겪고 있었다. 또한 한 사업장에 오래 근무할수록 소화장애 및 우울증 근골격계 질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우울증도 20.5%나 차지했다. 특히 민원전담부서의 경우는 27.8%가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진단 받았던 것으로 나타나 정신건강상의 장애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블랙컨슈머’로 인한 악성민원 유형을 경험한 근무자들은 대부분 무리한 사과 요구 및 인격무시, 욕설과 폭언, 성희롱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블랙컨슈머’에 의한 악성민원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 대책은 부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악성민원이 발생했을 경우 회사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그냥 업무에 집중한다’는 응답이 52.2% ,‘말로 위로해 준다’는 응답이 45.8%를 차지해 대부분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과’하라는 경우가 24.4% 였고,  ‘징계성 조치’ 및 ‘인사상의 불이익’을 안겨준다는 응답률도 대동소이했다. 

정 위원은 감정노동자들의 업무적 개선방안으로 ‘근로기준법상 감정노동의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감정노동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라는 이분법으로 규명할 수 없는 새로운 노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근로관계의 기본규범인 근로기준법에 감정노동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감정노동의 유해인자에 대한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보호 강화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단기수익 중심의 성과주의 지표로 평가되며,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지적되는 핵심성과지표(KPI) 고객만족도 항목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고객만족도라는 판단기준이 평가자 또는 고객의 자의적, 주관적 기준에 따라 좌우될 여지가 많고,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의 직무능력과 의욕을 고갈시켜 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정 위원은 금융감독원의 ‘민원발생평가제도’는 노동자의 소명권을 보장해야 하며, 제도가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 위원은 “ 고객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 등에 좌우되어 제기되는 민원들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고 접수되고 있다. 금융거래와 무관하거나 과잉요구를 제기하는 민원에 대해서는 민원발생 건수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어 “은행에서는 감정노동의 문제는 노사 공동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근로조건 개선 및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하여 감정노동을 완화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관리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금융회사들의 공동대응방안 등이 마련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성과주의 개선필요...
금감원은 객관적인 민원 내용 평가해야“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패널 및 참가자도 발제자들의 발표에 동의하며 금융부문 감정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김문호 금융노조위원장은 “한국사회는 지나친 친절을 요구하고 바라는 것이 당연시되고 관행화됐다”면서, “특히 금융권의 대고객서비스 담당 직원들은 대부분 여성노동자로서 폭언, 성희롱 등에 괴롭힘 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신한은행 노동조합 유주선 위원장은 “감정노동을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고, 근로자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감정을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나타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은행부터 변화되어야 한다. 과도한 성과주의와 과잉서비스가 개선되어야 하며, 모니터링제도는 개선이 아니라 폐지되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 KB국민은행지부 손경욱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금융부문 감정노동 및 블랙컨슈머 대처방안'  세미나에 참석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다.

KB국민은행지부 손경욱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도 블랙컨슈머 문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에 동의하며, 의견을 밝혔다. 손 수석부위원장은 “팀원들이 6개월동안 ‘블랙컨슈머’에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며, 금융감독원은 ‘민원발생평가제도’를 민원을 담당했던 노동자에게도 소명기회를 갖도록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며, 민원 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기식 의원이 '금융부문 감정노동 및 블랙컨슈머 대처방안'  세미나에 참석하여 의견을 말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소속 김기식 의원은 "금융사는 영업점의 친절도, 고객만족도를 점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고객만족 평가, 소비자 보호지수, 암행감찰(미스터리쇼핑) 등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 친절만을 강요하는 내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블랙컨슈머들의 부당한 이익 취득을 막고 금융권 종사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월간금융계 /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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