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한국금융연구원 김동환 선임연구위원
  • 칼럼
  • 입력 2010.04.01 10:34

오바마 금융개혁과 은행의 책임

‘Volcker Rule’이라 불리는 금융 개혁안은 최소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에 모두 적용되며, 금융의 대형화·겸염화·증권화가 야기하는 규모 및 범위의 비경제, 자본시장의 투지장화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공공성을 소홀히 하는 은행은 지급결제기능을 전유할 수 없고, 상업성을 소홀히 하는 은행은 관치나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은행은 더 이상 은행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난 1월 2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확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에는 인색한 채, 공격적·이기적 영업을 지속하는 금융회사의 무책임한 행태를 탓하며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명‘Volcker Rule’이라 불리는 이번 개혁안은 은행 및 은행계열 금융회사의 과도한 위험투자를 막고 납세자들 을 보호하기 위해 대고객 서비스와 상관없이 자사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모펀드, 헤지펀드, 자기계정 트레이딩의 소유(own), 투자(invest), 지원(sponsor)을 금지하는 동시에 더 이상의 대형화(consolidation)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현재 개혁안에 대해서는 갑론을 박이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주요 금융선진국의 공식 입장을 논의하는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Stability Board)는 대마불사(toobig- to-fail) 관행이 쐐기를 박는 개혁안에 적극 찬성한 반면, 미국 재무장 관 인 Geithner는 개 혁 안 의 취지가 어디까지나 금융 시스템의 안정에 있지 은행의 규모와 영업활동을 제약하여 월가의 대외경쟁력에 타격을 가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한편 월가의 은행들은 1월 29일 다보스 세계 경제포럼등을 통해 개혁안에 적극 반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점이다. 개혁안의 내용이 모호하여 앞으로 규제체계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개혁안에서 말하는 금융회사의 범위

개혁안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주요 원인이 대고객 서비스와 상관없이 자사 이익만을 추구하는 은행의 각종 펀드 소유 및 투자, 자기계정 트레이딩에 있었다는 판단에 입각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의 파산에 있었고, 파산의 직접적 원인은 유동화증권에 대한 단기성 자기자본투자(principal investment)와 같은 자기계정 트레이딩의 손실에 있었음을 감안할 때, 적어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개혁안의 대상이 되는 은행은 투자은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은행 대신 상업은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까닭은 책임을 물어야 할 대형 투자은행들이 파산, 합병, 업종전환 등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 데에 크게 기인한다.

물론 상업은행이 유동화증권의 설계 또는 판매에 직접관여하여 작위 또는 부작위의 오류(예컨대 설명책임 준수위반)를 범했다면 상업은행 역시 응당 책임을 져야 할것이다.

하지만 상업은행은 리먼사태 당시에도 지주회사 방식에의하지 않고서는 투자은행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으므로 단독으로 유동화증권의 설계 또는 판매에 직접 관여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은행지주회사 산하의 투자은행자회사는 경우가다른바, 만약 개혁안에서 말하는 은행이 상업은행을 지칭한다면 향후 은행지주회사 산하의 투자은행자회사는 상당한 정도로 업무상의 제약을 받게될 지도 모르겠다.

이는 작년에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한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회사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것으로, 이들 은행지주회사로 하여금 또 다시투자은행으로 복귀하게 하는 시대착오적 오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번 개혁안이 투자은행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면 제2, 제3의 리먼사태는 언제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상업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론 채권을 대차대조표에서 차감하지 않고 CDS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하여 회계상으로만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는 방식의 유동화(즉 true sale이 아닌 방식의유동화)를 행함으로써 유동화증권의 하자나 환매 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지나친 레버리지를 발생시킨 책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수로 위험투자에 내닫게 한 책임 등도꾸준히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 책임은 회계 및 감독 당국, 주주의 책임과도 어느 정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 유독 상업은행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개혁안에서 말하는 은행의 범주에는 적어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렇듯 은행이 질타의 대상이 된 것은 이하에서 살펴볼 금융의 대형화, 겸업화, 증권화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대형화·겸업화·증권화,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2000년접어들어 IT 버블이 붕괴도자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대형 투자은행들은 파생금융상품 및 이를 이용한 유동화증권의 개발과 판매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또한 대형 상업은행과 보험회사들은 19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글라스-스티걸법이 폐지되고 지주회사를 통해 양자간 겸업을 허용하는 그램-리치-블라일리 법이 제정되자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투자은행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적극적이었다.

리먼사태는 이와 같은 대형화·겸업화·증권화 현상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대 사건이라 하겠다.

어떤 의미에서 은행의 역사는 대형화·겸업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고객수요를 충족시키고 국제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발적 인수·합병뿐만 아니라 도산한 금융회사의 구제,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대규모 인수·합병이 정책적으로 유도되기도 하였다.

한편 증권화는 겸업화와 더불어 진전되다가 기업의 은행이탈 내지 금융의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 과정에서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상업은행의 역할이 축소되는 대신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하는 투자은행의 역할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대형화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를 살리는 장점이 있는 반면 조직을 비대화하거나 관료주의에 물들게 하고, 시장경쟁을 제한하거나 금융소외계층을 확산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겸업화는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여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등 범위의 경제(economies ofscope)를 살리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형화를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는 가운데 업종 및 상품간 위험을 전이시키고, 금융회사-고객간 및 업권간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s) 문제를 야기하며, 금융감독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한편 증권화는 자금조달 및 운용상의 편의를 제고하는데 기여하는 반면 자본시장을 단기 매매차익 실현의 장, 머니게임의 장으로 전락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이번 개혁안은 대형화?겸업화?증권화가 야기할 수 있는 규모의 비경제(diseconomies of scale), 범위의 비경제(diseconomies of scope), 자본시장의 투기장화내지 금융자본의 투기자본화에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확대,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에는 인색한 채 공격적, 이기적 영업을 지속하는 은행의 무책임한 행태를 탓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

오바마 대통령이 은행을 탓하는 배경에는“공적자금으로 기사회생한 주제에…”,“ 가계대출과 수수료 수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처럼, 중소?영세기업, 서민 등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본연의 공공적 기능 또는 사회적 책임 수행에 소홀하다는 비판적 여론이 크게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상업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의 채널기능, 지급결제기능, 자금중개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가운데 통화신용정책의 채널기능과 지급결제기능은 물가의 급격한 변동돠 금융시스템의 체계적 위험(systemicrisk)을 예방하여 경제 및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상업은행을 보호하는 동시에 강도 높은 규제와 감독을 실시하는 이유도 상업은행이 이와 같은 공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있다.

이에 반해 자금중개기능은 점차 상업은행의 고유기능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바, 이는 기업의 탈은행화, 금융의 탈중개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지 상업은행 스스로 도덕적 해이를 일 삼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상업은행이 공공성 차원에서 신용위험이 매우 높은 자금 중개까지도 수행해야만 한다면 건전성이 더욱 강조되는 최근의 금융감독 추세에 역행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공공성의 범위를 확대하여 지나치게 이를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책임은 성숙한 시민의 자랑이 아니라 미성숙한 노예의 짐이 되고 만다.

사회적 책임은 스스로 지켜나가는 명예인 것이지 법으로 강제할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은 공공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공공성을 소홀히 할 경우 지급결제기능은 상업은행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상업성을 소홀히 할 경우 은행은 관치나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할 경우에는 더 이상 은행으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열정, 노력, 꿈 그리고 청년투데이
저작권자 © 청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