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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정영희 기자
  • 기획
  • 입력 2015.02.23 13:48

창조금융, 경제 활성화하는 마스터키 될까?

▲ 지난 2월 3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예금보험공사 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2015 범금융 대토론회'. (사진=연합)

[월간금융계=정영희 기자]

‘창조경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중심이자 핵심 정책목표다. 방향은 1년전에 내놓았으나 세월호 여파 등 각종 사건사고가 많아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대규모 선거 이슈도 없을뿐더러 예측 불허의 변수가 없다면 비교적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기다. 더구나 2015년은 경제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많은 전문가들이 인식하고 있다. 창조경제의 주축인 ‘창조금융’이 올해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창조·기술금융 투자하자…
정부, 금융권 지원 쏟아져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신년사에서 창조경제를 거듭 강조했다. 특히금융부문은 올해 들어 그가 추진하는 4개 중심 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 중 하나이다. 박 대통령은 금융에 대해 담보나 보증 위주의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금융인이 우대받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창조경제의 주역을 '중소·벤처기업'으로 지목하면서, 대기업과 이들을 연결해 '원스톱 지원'이 가능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올해 상반기 안에 전국 17개 시도에 모두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올해 전국과 전 산업으로 창조경제를 확산해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다.
 
창조경제에 발맞춰 금융위원회는 ’창조금융‘을 내걸었다. 창조금융의 핵심은 곧 ’기술금융’이다. 기술금융이란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기업의 신용등급이 낮거나, 시작단계여서 자금융통이 어려운 기업, 창업을 못하고 있는 단계의 위치에 있는 기술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 담보나 보증이 없어도 자금을 저금리로 지원해주는 것을 뜻한다.
 
금융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 등 5개 부처는 지난 1월 15일 청와대에서 ‘역동적 혁신경제’ 실현을 위한 올해 주요 업무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융위의 올해 업무계획은‘모험자본 중심의 창조적 금융생태계’ 활성화이다. 이에 거액의 창업지원금을 조성키로 했다. 산업은행 63조원, 기업은행 56조원, 신용보증기금 41조원, 기술보증기금 19조원등 180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할 전망이다.
 
올해 기술신용평가 대출 목표로는 3만2천100건인 20조원 수준을 설정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실적을 연 환산으로 변환한 수치인 2만9천건, 17조8천억원 대비 10% 증가했다. 금융사들은 기술신용평가에 기반해 약 20조원의 대출을 공급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창업 시 투자자금 3조원을 지원하고, 신성장산업 등에 100조원을 공급하며 만약 실패했을 경우, 연대보증 면제 확대 등 재도약 기회를 제공한다. 기업 성장단계별 지원체계를 구축하여 이른바 ‘선순환 금융생태계’를 조성할 것임을 예고했다. ‘ActiveX 제거’ 등 패러다임 전환, 핀테크 지원센터 설치 등 핀테크(Fintech)를 정점으로 하는 전자금융도 본격적으로 육성키로 했다. 핀테크 산업에 대한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도 처음으로 이뤄지며, 규모는 2천억원 이상이다.
 
금융감독원도 기술금융에 힘을 실을 것을 예고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정부의 핀테크 육성정책에 부응하여 핀테크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진 원장은 "보안성 심의와 인증방법 평가제도를 폐지하는 등 핀테크 업체가 금융시장에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불필요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고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은행 중심이었던 기술금융 시스템도 비은행권(자산운용사, 벤처캐피털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우선 은행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술신용평가 대출을 자산운용사나 벤처캐피털, 사모펀드(PEF)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들 금융회사 역시 기술정보데이터베이스(TDB)를 활용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기술금융 시스템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금융의 외연을 대출에서 투자로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
 
은행권도 기술금융에 속속 동참했다. 우리은행은 작년 초 창조금융팀을 신설하고, 같은 해 7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등급(우리은행 평가 BBB0 이상)과 기술등급(TCB 평가 T6 이상)을 가진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1천억원 한도의 '우리창조 기술우수기업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해 8월 정부의 새 경제정책 추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금융지원 3대 핵심테마'를 선정, 11일 발표했다. 3대 핵심테마 ▲중소기업ㆍ소상공인 지원 확대 ▲지식ㆍ기술금융 지원 ▲중소기업ㆍ소상공인 대상 재기(再起) 지원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기업, 우수 기술력 보유 창조기업, 유망 수출기업, 소상공인 등 중점 지원분야에는 총 5조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기술금융 관련 대출 실적이 지난 해 9월 1조 5천억원을 넘었다. 우수 기술을 가진 창업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기술형 창업지원대출'은 지난해 6월 출시해 7천402억원의 대출이 취급됐다. 신한은행 자체 기술금융 상품인 '연구개발 우수기업 대출'도 7천152억원의 실적을 냈다. 도입 2개월여가 된 기술신용평가(TCB) 기반 대출 실적은 503억원이다.
 
기업은행 권선주 은행장은 기술신용평가서(TCB)의 평가등급에만 의존하는 기술금융에 머물지 않고 거래기업의 가치를 직접 심도 있게 평가하는 기술금융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기업은행은 작년말 기준으로 은행권 전체의 TCB 기반 대출 실적 약 9조원 가운데 2조2천억원(24.8%)을 차지해 '1위 실적'을 거둘 만큼 기술금융을 주도하고 있다.
 
금융권 “은행혁신성 평가, 은행 줄세우기 아니냐”
“민간 금융사 경영 자율성 침해 소지 있어“
 
2014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은행 혁신성 평가를 시행했다. 평가 우수 은행에는 신용보증·기술보증·주택신용보증기금의 출연요율을 차등화하고, 온렌딩 신용위험 분담한도를 50%에서 70%로 확대하는 등 정책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8일, 금융위는 제1차 금융혁신위원회를 열어 기술금융과 기존 관행 개선 실태 등에 대해 혁신성 평가라는 이름으로 은행 순위를 평가·발표했다. ‘은행 혁신성 평가‘에는 은행 직원 성과평가체계(KPI)에 기술금융 관련 평가항목(취급실적, 잔액, 신용대출 비중, 차주수, 창업기업 차주수 등)을 신설하기로 하고, 은행별 KPI에 1∼4개 평가항목이 추가될 예정이며, 기술금융 실적은 120∼150%의 가중치를 부여해 우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중 은행들은 은행 혁신성 평가에 순위와 상관없이 불편한 기색이다. 은행별로 규모와 특징이 다른데 이를 단지 일반·지방·특수은행 등 3개 그룹으로 구분해 기술금융 실적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평가지표는 기술금융(40점), 보수적 금융관행개선(50점), 사회적 책임이행(10점)으로 구성됐다. 평가 결과 일반은행에서는 신한은행이, 지방은행에서는 부산은행이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이 평가 결과와 관련하여, 은행권은 제도 취지에 공감하며 손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기술금융 확대에 힘을 쏟고 있는데 굳이 정부가 은행들을 '줄세우기' 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 부행장은 "기술금융으로 중소기업 지원을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하려는 방향은 공감한다"면서도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술금융을 추진하는데 성적을 발표하고, 순위로 줄세우기 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금융당국의 이런 개입은 민간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은행 부행장은 "손실을 감수하면서 기술금융을 추진하는 것인데 성적을 발표하고 순위로 줄세우기 하는 것은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면서 "민간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 침해 소지도 있는 만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열린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을 마친 뒤 센터 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
 
녹색금융,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 등 ‘그때뿐?’
전문가 "장기적인 대응책 필요"
 
기술금융은 2009년 당시 이명박(MB) 정부 발전 전략이었던 ‘저탄소 녹색성장’과도 비교되고 있다. 당시 금융위는 금융업권에 녹색금융상품의 보급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녹색 산업에 대한 금융지원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각 금융사는 너도나도 추진단을 구성해 경쟁적으로 녹색금융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2009년 녹색금융 출범 당시 42개의 녹색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이 대통령 재임 기간 녹색성장 관련 펀드만 총 86개가 출시됐다.
 
그러나 정부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며 대중화를 시도한 녹색금융은 정권이 바뀐 현재 흐지부지되거나 부실해졌다. 대부분의 은행이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통합해 현재 녹색금융은 시장에서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런 현상은 녹색금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의 IT 벤처 육성책,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 등 5년 정권을 주기로 금융정책과 관련 상품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손해가 나는 사업이라도 정부 시책이라면 금융권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국자들에게 강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권을 대표하는 상품이 출시되면 주변 사람들을 총동원해 실적을 높이려고 한다"면서 "시장의 호응이 저조하고 수요가 낮은 상품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코드 상품에 통폐합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현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추진한 기술금융의 실적은 같은 해 연말 9조원에 이를 정도로 증가세가 빠르지만, 상당 부분이 대출 갈아타기와 자영업자 대출로 부풀려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올해 금융위가 기술금융 목표치로 설정한 20조원은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기술금융에 대한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적인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는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기술금융은 1∼2년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정부가 너무 속도전으로 나가다 보니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대출이 대부분"이라며 "국민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6월말∼12월말)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외환은행 등 6대 은행에서의 기술금융 실적은 6조원에 육박했지만, 중소기업대출(자영업자대출 제외)은 같은 기간에 8천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기술신용대출 증가액(5조9천억원)의 7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중소기업 신용대출이 정교하게 관리되지 않을 때 금융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금융권의 대출이 담보나 보증 대출에만 의존하는 보신주의는 문제지만, 실효성이 불투명하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정책금융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은행의 속성상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IT 버블과 최근 모뉴엘 사태처럼 기술금융을 무턱대고 장려하다가는 자칫 커다란 위험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술금융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줄 세우기를 하며 독려하다 보니 은행이 기존의 검증된 곳에만 대출하는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라며 "실적을 포장했다고 은행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사들이 5년 안에 정권의 금융정책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적당히 시늉을 하고 실적을 포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개발하는 혁신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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