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더러 현실과는 상관이 없이 행복을 많이 느끼는 국민인 듯 하다는 얘기다.
한국계 미국인이 세계은행(IBRD)의 차기 총재로 내정이 되자 온통 떠들썩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느낌이었다나 보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 서구 등지에서는 자국민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라도 그렇게 열광하지 않는다 한다. 한 인물의 출현을 두고 뭐 그리 대단하게 다루어지는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는 거다.
많은 국민 중에는 잘난 이도 나올 수 있기 마련이니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아 덤덤하게 넘긴다는 행간이다.
그렇지는 않다.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또 하나의 국가적인 경사다.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가의 위상이다. 그 배경에는 국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서다.
국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는 경제. 국방. 기술 등이 기초다. 지난 해 우리나라의 국력은 137개 국가 중 11위다(National Ranking)
중국 사회과학원은 우리의 국력을 9위로 평가했었다. GDP규모(IMF)는 세계 12위다. 이러한 국가적인 힘이 있었기에 국제기구의 수장을 두 사람이나 배출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G20 회의와 핵 안보 정상회의는 성큼 자란 국력을 투시한다.
죽은 듯하던 땅에서 라일락이 꽃잎을 피우는 4월을 두고, 시인 T.S Elliot는 ‘잔인한 달’ 이라고 읊었다.
1차 대전(大戰) 이후, 모든 정신의 황무지(waste of land)에서 더 이상 진정한 라일락 꽃을 피울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 살아남은 자에게 차라리 잔인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그러한 가운데 수많은 생명들이 봄을 맞아 다시 태어나는 그 자체가 잔인하다는 생각이었을까!
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고통도 없을 테니까. 4월이 오면, 우리에게는 ‘4.19혁명’이 떠 오른다.
저 멀리는 임진년에 개전(開戰)이 된 왜란도 4월이 시작이었다. 이후 몰락의 길은 역사의 인과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 달에는 세계은행 총재가 정식으로 선출된다. 총선에서도 사람을 골라야 한다. 국력을 늘릴 수 있는 그런 인재가 뽑혔으면 한다. 동시에 군을 해적이라고 비아냥대는 그런 무리는 솎아내었으면 한다. 국력을 갉아먹는 좀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4월은 라일락 향기가 진동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