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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원혁 기자
  • 기획
  • 입력 2016.07.02 22:07

김동규,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본 인문학(나)의 발견

제 6회 나는 자유다.

사진은 일본 남알프스의 산맥입니다. 후지산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 째 높은 기타다케 정상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양 쪽의 기상이 확연히 다릅니다. 동쪽은 태평양에서 몰려온 구름으로 가득하여 도무지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만 서쪽은 너무도 맑아 계곡까지도 다 내려다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구름은 바람에 밀려 남알프스의 높은 산맥에 부딪치지만 그 너머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남알프스 산맥이 되받아쳐서 구름은 하늘로 올라가서는 자기가 돌아왔던 자리에 머무를 뿐입니다.

능선에 선다는 것은 양 쪽 계곡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 계곡의 사람들은 자기 반대편의 세계를 상상도 못합니다.

힘들고 외로워도 계곡의 우리에 갇히지 말고 능선 위 경계에 있어야 합니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신념과 이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통찰의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념, 이념, 가치관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알프스 산맥 너머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은 고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확실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이 멈추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강한 의지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티베트의 성인 마르파를 만났습니다. 11세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인 카규파의 창시자입니다.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 그의 이름을 따서 마르파인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추앙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도 실수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걸핏하면 아내를 때리기도 하고 잘못된 관정식으로 아들을 죽게까지 했습니다.

그는 세 번씩이나 인도를 찾아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인의 답답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너무나 분명한 생각들이 현실에서는 가족을 괴롭히고 심지어 아들을 죽게 하는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결과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가르침을 받고자 먼 길을 나섰습니다.

히말라야 높은 산을 오르내리다가 깨달았을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경계에 섰습니다. 여태까지 티베트 불교에서는 지도자는 부자 세습이었습니다. 그가 ‘활불제도’를 창안합니다.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라마(티베트 불교 승려)는 죽은 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입니다. 종정의 자리를 아들에게 세속하지 않는 ‘활불제도’는 아들을 죽게 한 실수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아들에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35명이나 죽은 살인귀 밀라레파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습니다.

얼마 전 일식집 초밥 명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조선호텔에서도 근무했던 경력의 소유자인데, 누구보다도 초밥을 잘 만드는 사람으로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초밥은 다른데서 느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봉급쟁이를 집어치우고 직접 개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제 다시 그는 맘을 잡고 주방장으로서 성실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리더란 통찰하는 사람입니다. 경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홀로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를 가두고 있는 우리일 뿐입니다.

우리를 떠나 경계에서 나 홀로 통찰하는 상태가 바로 자유입니다. 때문에 외롭고 힘듭니다. 확실한 것이 없으니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태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호함과 불안의 경계에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견디지 못하고 한 쪽을 받아들이면 끝입니다.

‘두드’는 네팔어로 우유, ‘코시’는 강을 말한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물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이리저리 부딪혀 포말을 내고 있다.

말 그대로 우유빛이다.

길은 두드코시 강을 따라 왔다갔다하며 꾸준한 오르막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노란 지붕의 케니게이트(마을 앞의 큰 대문)를 통과하자

여태까지 숨어서 기다리던 남체 마을이 불쑥 나타나 나를 놀래켰다.

깜짝 놀라 뒷걸음쳐 케니게이트 뒤편에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천천히 통과하니,

이번에는 마을 전체가 빙 둘러 앉아 나의 등장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왔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는 오페라 극장의 무대에 들어선 주인공이었고

무대 중앙으로 가서 인사를 할 차례였다.

팍딩 마을 입구의 케니게이트는 티베트 불교 진언‘옴마니밧메홈’의‘옴’을

커다랗게 새긴 바위였다.

선명하게 각인들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글자 하나하나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옴’자는 마치 수려한 승복을 입은 승려가 춤을 추는 동작이다.

‘옴마니밧메홈’을 한 번 암송하는 것으로 경전을 한 번 읽는 효과가 있다는데

‘옴’자 하나만 바라보아도 그 효과는 충분하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옴마니밧메홈’을 수없이 봐 와서 벌써 깨우침을 얻은걸까?

‘옴’자를 바라보며 무수한 상념이 있고, 아무것도 없는 무아가 있다.

 저자 김동규는 평생직장(국민은행 30년 근무)을 퇴직 후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를 다녀와서 『히말라야를 걷는다』를 출판했다.

현재 『월간 마운틴』 객원 편집위원, 혜초여행사 객원가이드, 한마음트레킹 학교 트레킹 분야 강사를 맡고 있으며,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본 인문학(나)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기업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인생의 후반전을 책상이 아닌 길에서 보내기를 희망한다. 앞으로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길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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