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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잇는 전통 성악가, 가곡 보유자 조순자 명인거스름 없는 자연의 질서, 그리고 인생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노래
삶의 시작과 끝인 노래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오랫동안 행복을 주는 노래
<국립무형유산원 소장 1959년 이주환이 편찬한 가곡악보를 등사한 책이다. 전체 59면 가곡보는 남창 가곡과 26곡 여창가곡15곡을 정간보와 율자보에 기보한 악보이다>

가곡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에 곡을 붙여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전통성악. 삭대엽(數大葉) 또는 ‘노래'라고도 한다.

삭대엽 이전에는 느린 곡 만대엽(慢大葉)과 중간 빠르기의 중대엽(中大葉)이 있었으나, 만대엽은 조선 영조대 이전에 없어졌고, 중대엽도 조선말에는 부르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의 가곡은 조선 후기부터 나타난 삭대엽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가곡은 남창 26곡, 여창 15곡 합하여 모두 41곡이다. 시조시 한편을 5장으로 구분하여 부르며, 전주 대여음과 간주 중여음을 넣어 대여음-1장-2장-3장-중여음-4장-5장 순으로 부른다. 연주 악기는 거문고·가야금·해금·단소·장구 등으로 구성된다.

<국가무형문화재로서 기·예능보유자 영송당 조순자  명인>

국가무형문화재로서 기·예능보유자인 김경배· 조순자· 김영기에 의해 전승되어 가고 있다.

거스름 없는 자연의 질서, 그리고 인생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노래

삶의 시작과 끝인 노래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 오랫동안 행복을 주는 노래

조순자 명인은 천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온 가곡으로 한국인의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순자 명인의 호는 영송당(永松堂)으로, 1944년 서울에서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셨다. 당시는 기성 예술인들을 기생 광대로 폄하하여 예술마저 격하시킴이 두드러져서 국악을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런 가운데, 국악은 정부에서 외국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공연을 해야 하는 그 필요에 의하여 나라에서 지원 육성하게 되었다.

이런 열악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1958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현. KBS방송국)의 국악연구생 2기로 선발되어 가무악(歌舞樂)을 전부 공부하면서 최고의 명창 명인들에게 여러 분야를 두루 배웠다.

이후, 1961년 국립국악원 연구원으로 이적하여 본격적인 가곡 전수를 받게 되었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조순자 명인의 첫 스승인 소남(韶南) 이주환 선생을 만나 가곡 전수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주환 선생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30호 가곡과 41호 가사의 예능 보유자이기도 하였다.

조순자 명인에게는 이주환 선생 외에도 훌륭한 스승이 두 분 있는데, 이난향 선생과 홍원기(이왕직아악부 5기생) 선생이다. 특히 이난향 선생은 우리나라 가곡의 명맥을 이은 하규일 선생의 애제자로, 여창 발성과 창법에 있어 뛰어난 스승이었다.

1964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국립국악원이 생기고, 국립국악원의 첫 해외연주회가 열렸을 때 가사 < 춘면곡>을 독창하였다.

당시 22살의 나이에 국립국악원 단원 중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던 조순자 명인은 이주환 선생과 함께 <태평가>를 이중창을 부르게 되면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8년 인천 인화여고 교사로 활동하던 중 마산에서 서울로 유학 온 남편을 만나 26세에 결혼을 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일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던 중 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마산에서 가업을 물려받게 되었다. 당시 조순자 명인의 친정은 물론, 주위 사람 모두 마산으로 가는 것을 만류했으나, 1970년 남편을 따라 마산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49년간의 마산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마산에 오자마자 국악교육연구회를 만들어 현직교사들을 대상으로 가곡 교육을 진행했고,  1973년 경남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와 마산교대 음악교육과 학생들에게 국악개론을 가르쳤다.

이후 20여 년간 한국교원대학교와 여러 대학에 출강하면서 가곡을 가르치게 되어, 조순자 명인으로 부터 국악을 배운 제자들은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외에도 1969년 개국한 마산 MBC(현. MBC경남)의 초창기 시절부터 초대손님으로 출연하다가, 1983년 MBC FM 개국 후 《FM음악회》, 《우리가락한마당》, 《국악으로 여는 아침》, 《우리가락시나브로》 등의 고정출연자 및 진행자로 40년 세월을 함께하는 등 지역 방송인으로도 활약하였다.

2001년 조순자 명인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가곡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나라별로 가곡을 번역해 뉴질랜드, 호주,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수차례 해외공연을 통해 가곡을 알렸다.

가곡은 문학성이 높은 시조시에 거문고, 피리, 대금, 장구, 단소 등의 관현반주를 곁들여 궁중에서 부르던 고급 성악곡으로, 조선시대의 소위 클래식한 성악 장르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고향 남쪽바다’ , ‘그리운 금강산’ 같은 서양음악 기법에 의해 우리말로 된노랫말을 가지고 만든 노래를 먼저 떠올린다. 고려시대 노래인 정과정곡(鄭瓜亭曲), 일명 진작(眞勺)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우리 가곡이 1920년대 이후 유입된 서양 가곡에 그 이름을 내어주고 말았다.

이런 가곡은 천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넘어 조순자 명인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불려 전해지고있다.

2010년은 가곡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해이기도 하다.

가곡은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사전 자문회의에서 이미 등재 권고를 받아 2010년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되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각국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제도로, 2003년부터 지정을 시작하여 각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유네스코 제4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는 가곡을 “서정성과 균형을 지니고 있으며, 세련된 멜로디와 진보적 악곡(樂曲)이자 한국적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어느덧 내년이면 가곡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된지도 10주년이 된다. 조순자 명인이 관장으로 있는 가곡전수관은 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 2동에 위치해 있다.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관 개관 기년 공연 "2006 천년의 노래, 피어 오르라"

가곡전수관은 관련 전공자들에게 국내외적으로도 위상이 매우 높다. 하지만 정작 소재지인 창원지역에서는 아는 이가 드물다.

국비, 도비, 시비로 가곡 전수관이 세워진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지만 대중교통 이용 불편과 주차시설 협소 등 주변 환경이 열악하여 이용객들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가곡전수관에는 가곡을 배우려는 소수의 일반인, 학생들만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가곡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노래일 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가곡을 극찬해도 이미 이 시대의 노래는 아니다. 

게다가 이 노래가 조선후기 내내 발전시켜 온 내용은 예술 수준이 너무 높아, 이제는 너무 어려운 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가곡은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장르이다.

그럼에도 이 훌륭한 가곡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노래이지만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삶 그리고 우주 만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 창원 시립 마산 박물관에 재직 중이신 김수진 학예사 님의 도움으로 작성 되었습니다.

 

조성준 기자  ds1ac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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