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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이일훈 전 수협중앙회 부회장
  • 칼럼
  • 입력 2010.05.10 11:33

가계수표 유감(有感)

‘마이너스 통장으로 바꾸세요.’
‘아니오, 나는 가계수표가 필요한 건데요.’
‘은행에선 가계당좌구좌를 없애는 방침이예요.’
최근 10여 년 동안 가계수표를 받으러 창구에 갈 때마다 창구직원이 강요하는 말이다.
나는 가계수표를 쓸 경우와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까지 1년에 2권 가량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인데 창구직원의 간곡한 권유에 당혹스럽다.
임기응변으로‘이번 것 1권만 더 쓰고 다음에 전환하도록 하지요’하고 수표책을 받아오긴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
30여 년 전 가계수표를 처음 도입했을 땐 신용사회를 창출한다며 은행직원에게 가계당좌구좌 유치를 신규로 할당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치정책을 펼쳤었다.
그러다보니 과열경쟁으로 이를 악용하는 고객이 생기는 등 신용거래의 문제점 등이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는 각 행에 신용공여(당좌대월)에 결함이 있는 것이지 가계당좌거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너스 통장은 수시대출, 수시상환이라는 편리한 대출제도이고 가계당좌는 예금범위 내(또는 대월한도 내)에서 지불대행을 의뢰하는 제도로서 성격이 완전히 다른데 마이너스통장으로 대체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며 은행 본래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에서 일반인의 지불수단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용카드(Credit Card)이고, 다른 하나는 가계수표이다.
신용카드는 결제가 확실하기 때문에 매출자 입장에서 선호하지만 일정한 비율의 카드결제수수료를 줘야한다. 따라서 신용이 확실한 사람이나 소액을 결제할 경우에는 개인수표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수표를 사용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공과금 납부, 할부금 지불을 하는 데는 가계수표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결제된 수표는 발행인에게 전부 돌아오니 장부정리도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은행의 입장에서도 교환결제 후에는 지불거절로 돌아오면 본인구좌에서 차감하면 되니 아무런 부담이 없다.
또한 소액수표 거래가 많아 원가계산 상 은행에 손해가 발생하면 소액거래 수수료를 받는다.
그래서 누구나 은행에 당좌거래구좌(Checking a/c)를 개설할 수 있고 개설하면 500매나 되는 수표책 한 박스를 받아 2년이상 아무 부담 없이 수표를 사용할 수 있다.
1999년 나는 미국 하와이대학에 교환교수자격으로 1년간 체류하면서 개인수표를 편리하게 사용한 경험이 있다. 단지 한국에서 온 visiting scholar라는 신분 뿐 아무런 신용기록이 없는데 Checking a/c를 개설하고서 바로 내 이름과 주소가 인쇄된 수표 500매를 받았다. 이 수표를 사용해 1년 체류하는 동안 거의 현금을 안 가지고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지불결제된 수표가 모두 나에게 돌아오니 가계부정리에 편리했다.
이러한 수표의 편리성과 거래의 투명성 등의 이유로 1980년대에는 신용사회, 선진화사회를 이룩한다고 각 은행이 과열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사용상의 불편함을 모르는 가계수표 이용자에게 은행의 수지타산 때문인지 정부의 정책변화인지 모르겠으나 계속 가계당좌(소액당좌)의 해지를 요구하거나 마이너스 통장으로 전환하라고 권유한다.
마이너스 통장은 대출거래로서 자금부족인 경우이지만 가계당좌 거래는 지불위탁거래이며 마이너스통장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은행거래 면에서 은행에 부담스러운 고객도 아니고 은행기여도면에 우수고객으로 예우를 받고 있는데 가계당좌 수표를 받으러 가거나 당좌a/c 연장을 할 땐 창구직원의 간곡한 거래해지요청에 불쾌감을 금할 수 없다.
기업인의 일반 당좌거래를 계속하면서 일반 개인이 사용하는 소액 가계당좌 거래만 해지요청하는 것은 정책상의 모순이다. 이것이 내가 거래하는 은행만의 정책인지 또는 정부의 신용정책 방침인지 궁금할 뿐이다. 창구직원에게 물으면 답변을 회피한다.
만일 이러한 가계당좌 해지요청 행위가 그 은행의 단독정책이라면 정책 및 감독당국에선 지도감독해서 일반국민의 불편함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10여년전부터 수출입물량 등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0위권 경제대국이며,OECD회원국이자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선진국이라 자부할 수 있는데 신용사회 증진 측면에서는 후진국형으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감(有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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