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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Fn21
  • 칼럼
  • 입력 2010.06.04 19:03

은행세 도입논란과 우리의 선택

지난 4월말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가장 논쟁적이었던 주제는 은행세(bank levy)였다.
당시 회의에서는 미국의 주도 하에 영국ㆍ프랑스 등은 은행세 도입에 적극적이었으나 캐나다ㆍ호주 등은 반대하였으며 여타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도 입장차가 분명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관련 논의는 6월에 열리는 부산회의에서 다시 재개될 전망이다.

은행세 논의의 동향

4월 G20 재무장관 회의를 위해 준비된 보고서에 따르면 IMF는 두 가지 형태의 은행세를 제안하고 있다.
금융안정분담금(Financial Stability Contribution; FSC)과 금융활동세(Financial Activities Tax; FAT)가 그것인데 금융안정 분담금은 금융기관의 자산 또는 부채에 부과되며 금융활동세는 금융회사의 이익 및 보수(compensation)에 부과된다.
이 두 가지 중 선호되는 안은 금융안정분담금이며 만약 도입된다면 은행의 비예금성부채에 부과하는 방식이 채택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은행세 도입을 발표한 몇몇 국가에서도 금융안정분담금 같은 형태의 은행세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
국제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및 감독이 강화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세 도입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 제도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은행세가 국제적으로 동일하게 도입될 필요가 있는 제도인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알려진 바대로 은행세 도입의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미국ㆍ영국 등 금융위기의 진원지 국가들이 위기 수습과정에서 투입된 구제금융 비용을 금융기관이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재정적자 확대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부문을 건전하게 유지해 온 국가들이 굳이 은행세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
설사 한 국가에서 구제금융 비용 충당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은행세를 통하여 조달할 필요도 없다.
각 나라마다 그 실정에 맞는 방식을 동원하면 될 일이지‘은행세’라는 수단을 국제기준으로 만들어 강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은행세의 문제점들

한편 금융기관의 부채에 과세를 함으로써 과도한 부채증가를 억제하여 향후 금융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은행세가 국제적 건전성 규제의 하나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기준으로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는 이미 BIS의 자기자본규제를 통하여 정형화되어 있으며 더구나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관련 규제는 대폭 개선될 예정이다.2)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를 막기 위해 현행 BIS 자기자본규제(risk-based 자기자본규제)의 보완책으로 전체 익스포저(exposure)에 대한 자본비율인 레버리지 비율(leverage ratio)이 새롭게 도입될 전망이다.3)
결국 과도한 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규제가 도입되는 와중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가진 세금이 부과된다면 이는 중복ㆍ과잉규제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건전성 측면에서 은행세가 추구하는 목적은 현재 논의 중인 BIS의 규제를 통해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재정적 측면에서의 은행세의 목적은 개별 국가의 사정에 맞는 방식으로 달성하면 될 것이다.

은행세의 또 다른 문제점은 금융소비자에게 쉽게 전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세금은 납부자가 모두 부담하지 않으며 일부는 전가된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같이 은행산업이 과점시장에 가까워 충분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세금은 소비자에게 쉽게 전가될 수 있다.
은행세로 인해 부채조달 비용이 증가할 것이며 이는 소비자의 자금조달 비용, 즉 대출금리 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또한 대출금리 증가는 은행의 대출구조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금리 상승은 한계기업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더 높이게 되므로 은행은 기업대출을 줄이고 보다 안전한 가계대출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한편 은행세를 통하여 외화차입을 줄일 수 있으므로 급격한 자본유출입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은행세가 생각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국내에서 지속적인 외화수요가 존재하는 한 외화차입에 따른 비용은 쉽게 소비자에게 전가가 가능하므로 은행세를 통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외화차입의 경우 중요한 것은 그 규모보다는 만기구조이다. 단기 외화차입을 위주로 한 자본유입은 금융시스템을 위기에 매우 취약하게 만든다.
이 같은 만기구조를 개선하는데 은행세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외화차입으로 인한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외화유동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은행세를 통해 기금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금융위기 시 구제금융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면 주주 및 채권자는 그 부실에 상응하는 손실을 분담하여야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많이 지적되었던 문제점 중의 하나가 이 같은 시장원리에 의한 부실정리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구제금융을 통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은행세를 통해 기금이 조성될 경우 이를 부담한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부실에 대한 비용을 이미 지불하였다는 인식을 할 가능성이 있어 리스크 관리에 소홀해 질 수 있으며 정부 입장에서는 금융위기 시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이 기금을 활용하여 정치적으로 보다 안전한 선택을 할 동기가 커진다. 결국 이는 금융기관의 과다한 리스크추구와 이의 해결을 위한 구제금융의 남발이라는 악순환을 더욱 공고화할 수 있다.

은행세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이 같은 여러 문제점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은행세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
금융규제가 궁극적으로 금융건전성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기존의 건전성 규제에 대한 개선, 또는 현재 국제적으로 논의 중인 건전성 규제 개선방안 등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판단된다.
G20 의장국 입장에서 미국ㆍ영국 등의 선진국과 정책공조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이에 얽매여 우리 금융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의장국의 지위를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이해를 관철하고 금융위기 이후 관행적으로 찾아오는 과잉규제 및 큰 정부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하겠다.

 



1) 올해 1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자산규모 500억 달러 이상인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대해 0.15%의 은행세(일명 Obama Tax)를 부과해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의 기금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독일 정부는 지난 3월말 은행의 규모 및 위험 익스포저에 연계하여 은행세를 징수해 안정펀드(Stabilization Fund)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2) Basel Com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Strengthening the resilience of the banking sector, Consultative Document, BIS, December 2009
3) BIS는 자본의 정의를 기본자본(core capital: 보통주와 잉여금)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자본의 질(quality of capital)을 대폭 개선할 예정이다. 이는 앞으로 자기자 본비율을 산출함에 있어 보완자본을 최대한 배제한다는 의미이다. 레버리지 비율는 자본에 대한 부채(익스포저)의 비율이며 기본자본으로 자본의 정의를 한정한다면 부채에 대한 자본비용(cost of capital)이 상당히 높아져 부채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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