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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양학섭 기자
  • 칼럼
  • 입력 2012.10.26 14:26

이경엽의 낱말산책, '대통령'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나?

[월간 금융계 / 양학섭 편집국장]

 

‘대통령’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나?

 

‘대통령’은 우연히 생긴 말이다.

‘대권’은 ‘대통령의 권한’을 줄인 말인가?

18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대선 때만 되면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대통령’과 ‘대권’이란 말의 유래를 알아보면서 분위기를 적당히 좀 식혀보자.

오래 전에 타이완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국가 원수를 ‘대통령’이라 하지만 타이완에서는 ‘총통(總統)’이라 하는데, 이는 ‘총 대통령’을 줄인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겼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국어사전은 ‘공화국의 원수’라고 간단히 풀이할 뿐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인데, ‘통령’은 한자문화권에 오래 전부터 있던 말이다. 그러나 공화국의 수반을 大統領으로 표기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뿐이다. 일본은 대통령제 나라가 아니지만, 미국․프랑스․한국 등의 정부 수반을 ‘다이토-료-(大統領․だいとうりょう)’라 부른다. 알고 보니 타이완과 중국은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도 ‘총통’으로 칭하는 모양이다.

한자로 ‘大統領’이란 표현이 처음 나오는 것은 1853년 7월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을 타고 일본에 가지고 온 미국 대통령의 친서다. 미국의 13대 대통령인 필모어(Millard Fillmore)의 친서로서, 영문 원본에 한문과 네덜란드문자로 번역본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한문본에 大統領이란 낱말이 나온다. 영어 원본의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가 “아미리가대합중국대통령(亞美理駕大合衆國大統領)”으로 번역되었는데, ‘합중국’과 ‘통령’이란 말 앞에 각각 大자를 붙이고 있다. 그리고 이 한문본을 일본에서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대통령’을 그대로 옮겨 적게 된다. 그러나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 간행된 사전이나 책에 ‘대통령’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영어 president를 두목․감독․통령․총통령․중통령(衆統領) 등으로 의역을 했거나, 아니면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으로 음역을 했던 것이다. 아미리가대합중국’이란 표현은 정식 국호라기보다는 미국이 스스로를 높여 ‘대합중국’이라고 쓴 것이다. ‘대통령’ 역시 당시 중국에서 president의 번역어로 사용되던 ‘통령’이란 말에 스스로를 높인 표현으로 ‘큰 대(大)’를 붙여 ‘대통령’으로 적은 것이다. 물론 친서를 받는 일본 측에 대해서도 ‘일본국 대군주전하(大君主殿下)’로 大자를 붙이고 있다. 국가 간에 교환되는 외교문서이기에 그렇게 자존적 표현 또는 예를 갖춘 표현을 쓴 것이다. 당시 president에 해당하는 번역어는 어디까지나 ‘통령’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위의 친서에 나오는 ‘대통령’이란 표기는 1844년 7월 미국과 청나라가 맺은 망하(望廈)조약에 나오는 표현 형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과 청은 마카오 부근의 ‘망하’라는 마을에서, 아편전쟁으로 영국에 패한 청이 1842년 영국과 체결한 남경조약과 유사한 내용의 조약을 맺게 되는데, 그 조약문에서 미국과 미국의 대통령을 ‘대합중국(大合衆國) 대백리새천덕(大伯理璽天德)’으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대합중국’은 합중국을 높여 부르는 경칭이고, ‘대백리새천덕’은 백리새천덕의 존칭일 뿐, ‘대합중국’이나 ‘대백리새천덕’이란 고유명사 또는 보통명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필모어 친서에서 망하조약의 ‘백리새천덕’을 당시 president의 번역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통령’으로 바꾼 결과, ‘大백리새천덕’이 ‘大통령’이란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대통령’이란 표기는 외교문서에서 예외적으로 한두 번 쓰였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이 외교문서에서 ‘통령’을 높이기 위해 大자를 붙였는데, 이를 번역한 일본에서는 ‘대통령’이란 말을 하나의 보통명사로 인식하였고, 이것이 일본에서 새로운 번역어로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대통령’이란 표기가 1853년에 처음 일본에 전해졌지만, 1854년과 1857년에 일본과 미국이 직접 조인한 조약에서는 ‘대통령’이라 하지 않고, ‘합중국주(合衆國主)’로 표기했다. 그때까지 ‘대통령’이란 말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약과 관련된 일본 측 회담기록에 ‘대통령’이란 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 관리들에게는 ‘대통령’이란 표현이 거의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1858년 조인한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대통령’이란 표기가 나오며, 1862년 출간된 󰡔영화대역수진사서(英和対訳袖珍辞書)󰡕에 president의 번역어로 ‘대통령’이 나타나고, 그 이후 출판된 대부분의 번역서에는 ‘대통령’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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