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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월간금융계
  • 칼럼
  • 입력 2012.11.09 10:30

이경엽의 낱말산책, '혁신과 연혁'

[월간 금융계 / 양학섭 편집국장]

 

혁신과 연혁

혁신, ‘혁’은 무엇이며, ‘신’은 무엇인가?

사물이나 조직의 변천 내력을 왜 ‘연혁’이라 할까?

 

정치는 경제와 담을 함께 쓰는 이웃이다. ‘경제’란 말이 원래 정치를 뜻하던 말이었음을 알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잘 알듯이 ‘경제(經濟)’는 세상을 다스려 어려운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경세제민’ 또는 ‘경국제민’을 줄인 말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므로, 경세제민 곧 경제는 정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지금 우리나라에 ‘정치혁신’, ‘경제민주화’ 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저것 모두 혁신 곧 확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혁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흉내만 내는 혁신이 아니라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 이곳저곳에서 어지럽게 춤추는 ‘혁신’이란 낱말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자.

이 경 엽
현) 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장
1958년 경북 감포
대구상업고등학교/건국대 경영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상학 석사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77년 한국산업은행
도쿄지점 과장/방카슈랑스사업단장
구미지점장
변화를 나타내는 말 중에서 ‘가죽 혁(革)’과 ‘새 신(新)’이 들어가는 낱말 몇 개를 옥편에서 찾아보니, 혁명․개혁․변혁․개신․쇄신 그리고 혁신 등이 눈에 띈다. 혁명(革命)은 이전의 왕조를 뒤엎고 다른 왕조가 들어서는 것인데, 천명(天命)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는 황제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한다는 사상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싸움에서 이긴 자가 새 황제가 되었다. 새 왕조는 항상 새로 하늘의 명을 받은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 하였다. 왕조가 바뀌면 왕조의 성이 바뀌므로, 중국 왕조의 혁명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한다.

개혁(改革)은 새롭게 고치는 것이며, 변혁(變革)은 사회나 제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하는 것이다. 개신(改新)도 제도․관습 따위를 고치어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개신은 7세기 중엽에 일본에서 왕을 정점으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일어난 대화개신(大化改新)이 유명하다. 16세기에, 종교 개혁의 결과로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의 여러 파를 일컫는 ‘개신교(改新敎)’란 말에도 ‘개신’이 나타난다. ‘쇄신(刷新)’도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말인데, 사전을 보니 묵은 것이나 폐단을 없애고 새롭고 좋게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서 쇄(刷)는 ‘쓸다․털다․닦다․씻다’는 뜻이다. 더러운 것을 깨끗이 닦는 것이 쇄신이다.

‘혁신’이란 낱말을 실감하려면, 한자 혁(革)과 신(新)의 뜻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革은 무두질한 가죽을 가리킨다. 동물의 가죽을 뜻하는 피혁(皮革)은 피와 혁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피는 무두질하지 않은 가죽으로, 원래 동물의 가죽 모습을 어느 정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혁은 무두질하였기 때문에, 동물의 몸에 붙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 된다. 그래서 ‘고치다․바꾸다’는 뜻을 나타낸다. 新은 어떤가? ‘立+木+斤’이 新인데, 여기에서 立은 ‘매울 신(辛)’이 변한 글자다. 신(辛)은 손잡이가 달린 큰 침을 가리키며, 근(斤)은 도끼를 뜻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조상의 위패(位牌)를 만들 때 숲에 가서 나무를 먼저 선택하였다. 그냥 눈으로 보고 고른 것이 아니라, 손잡이가 달린 침을 던져 여러 나무 중에서 그 침이 꽂힌 나무가 선택되었다. 선택했다기보다 점지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선택된 나무를 도끼로 자르고 깎고 다듬어 위패목을 만들었다. 당연하지만 만들어진 위패목은 숲속에 서있던 나무 원래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새로 바뀌어 만들어진 것을 新이라 불렀다. 결국 나중 모습에서 이전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뜻이 담긴 글자가 革이며 新이다. 革新은 그런 것이다. 완전히 변하는 것이다. 동물을 잡아 가죽을 만들고, 나무를 베어 위패를 만들 듯, 어떤 의미에서 혁신은 청산해야 할 과거와 결별하고 희생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혁신을 영어로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 하는데, J.A.슘페터의 경제발전론에 등장하는 이노베이션 개념을 경제학 등에서는 이를 ‘기술 혁신’ 또는 ‘신기축(新機軸)’으로 번역한다. 이제까지 없었던 새 상품의 개발, 새 기술, 새로운 생산 조직, 새 원료, 새 시장의 개척 따위의 새로운 방법을 끌어들여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는 일을 통 털어 일컫는 개념이다. 기축(機軸)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글자그대로의 뜻은, 기관이나 바퀴 따위의 굴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혁신을 기축과 관련지어 말하면, 기존의 굴대가 아닌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굴대를 생각하면 된다. 굴대가 없으면 수레나 자동차의 바퀴를 굴릴 수 없듯, 차륜에서 굴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신기축은 새로운 굴대를 말한다. 굴대를 바꾸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혁신’이란 말의 뜻을 염두에 두고 ‘연혁(沿革)’이란 말을 생각해 보자. 인터넷에서 어떤 조직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면, 그곳에는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그 조직의 ‘연혁’이 소개되고 있다. 기업인들이 비즈니스든 홍보든 격식을 갖추어 자기 회사를 소개할 때에도 ‘연혁’을 먼저 설명한다. 국어사전을 보니 ‘연혁’을 사물이 변천해 온 내력이라고 한다. 어떤 조직의 변천 과정도 ‘연혁’이라 하는데, 그러면 이때 구체적으로 ‘연’과 ‘혁’이 무슨 뜻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따를 연(沿)’은 흐름에 따라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강물이나 바다의 흐름을 따르거나, 길과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나 강에 잇따른 언덕이나 기슭을 연안(沿岸)이라 하고, 바다에 잇따른 육지를 연해(沿海)라 한다. 글자의 변이 삼수(氵)인데서 알 수 있듯 주로 물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연’이다. 그리고 ‘가죽 혁(革)’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한대로 무두질을 한 가죽으로서, 산 짐승의 표피와는 전혀 다르게 변한 것을 뜻하는 글자다. 따라서 ‘혁’은 변화 그것도 완전한 변화를 뜻하며, 또한 사람이 손으로 짐승을 잡듯 특히 인위적으로 만드는 변화를 뜻한다.

어떤 조직이 출범하면 여러 가지의 변화를 겪는다. ‘자연스런 변화(沿)’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큰 변화(革)’도 거치게 된다. 전통을 잇고 발전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변화 곧 ‘연’이라 할 수 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새롭게 고쳐 바꾸는 작위적인 변화는 ‘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과 혁 속에서 조직은 결과적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이제 각자가 소속되어 있는 조직의 연과 혁을 한 번 살펴보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아니면 자영업자의 조그만 구멍가게든 저마다 지나온 자취가 있다. 자취 하나 하나를 더듬어 보면서 연과 혁이 어느 정도로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자. 沿으로만 일관된 조직은 구성원들의 활력이 떨어지고 그다지 발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革으로만 이루어진 조직 또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기초를 이루는 든든한 토대와 전통이 부실하고, 구성원들은 ‘혁신 피로’에 젖어있을 수 있다. 조직에는 연과 혁의 적정한 조화가 필요하다. 특히 경영자들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혁신은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바뀌는 탈바꿈이다. 연혁은 전통과 창조를 교직(交織)하는 조화의 셈법이다. 가끔씩 이들 낱말의 본래의 뜻을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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