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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양학섭 기자
  • 기획
  • 입력 2012.12.12 14:06

[인터뷰]실리콘벨리 TYK그룹 김태연 회장

[월간 금융계 / 양학섭 기자]

‘CAN DO정신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9남 6녀 입양한 부량아들의 어머니
-미국에서 가장 취업하고 싶은 1위 회사 등극
-실리콘벨리 ‘최고 여성기업인 상’수상 外...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유난히 심했던 우리 과거를 부끄럽게 하는 TYK그룹 김태연 회장.
특히 김회장은 대한민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행복 전도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김회장은 이미 미국 뿐만 아니라 국내 수많은 언론매체에 소개되었듯이 세계속에서 성공한 열성 커이어우먼 중 한명이다.

젊었을때 김태연 회장 모습
가족들의 모진구박이 나를 성공시켰다(?)

정월 초하루 경북 김천에서 맏딸로 태어난 김태연 회장. 그의 서러움과 구박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에게 온갖 구박과 설움을 받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치가 떨립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옹이가 박혀 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용서했습니다.”
“자식으로서 단 한번만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딸’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저보다도 더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아마도 아들 못 낳은 죄로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집안 어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자란 그녀는 22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세계1위 기업인 LIGHTHOUS그룹 회장으로 우뚝 섰다.


물론 초창기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몇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만한 분량이 다. 특히 동양인으로서의 받은 구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래서 화려한 의상과 화려한 화장이 습관이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얻어간 것은 7곱살 때 삼촌에게서 배운 태권도와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오기뿐이라고 한다. 1968년 미국 동부 버몬트에서 태권도를 시작하여 1978년 미국여자팀을 이끌고 국제 태권도대회에 참가했다. 그 후 1994년 세계무술협회에서 여성 최초로 ‘그랜드슬럼’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태권도가 10단이며 전 가족을 합하면 80단이 된다고 한다.
최 회장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거리에서 방황하는 중독자들을 자녀로 입양하여 태권도로 정신무장과 사랑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 훌륭한 사업가들로 재탄생시킨 사업가로도 유명하다. 

‘TYK’그룹은 ‘CAN DO’정신의 결정체

김태연 회장은 미국내에서 우량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는 하이텍 회사, ‘Lighthouse Worldwide Solutions’, 일명, ‘라이트 하우스’ 를 비롯해 몇개의 계열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여성 기업인이다. 김 회장은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편견과 인종차별의 벽을 허물며 싸워나가야 했다.
세계 하이텍의 메-카, 실리콘 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본사를 두고, 오래곤 주에 공장이 있으며, 미국 국내와 세계 120 여 개국에 세일즈 에이젠트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벤쳐기업의 최고 경영자이다. 김 회장은 15만평 부지에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저택에서 정치기금 모금 행사나, 자선기금 행사등, 많은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루기도 하며, 한국의 많은 저명 인사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백만부 이상의 베스트 셀러의 저자, 미국인 남녀, 9남 6녀를 입양한 어머니로도 유명하다.
또한 벨지엄에서 한국 여성 최초로 작위를 수여 받기도 했으며, 미공군에서는 명예 대령으로 위촉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 되어 수상하였고, 실리콘밸리 상공회의소가 수여하는 ‘최고 여성기업인 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여성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Susan Anthony’ 상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의 활동은 주류사회에서 더욱 뚜렸하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미 동부 버몬트에서 어려서 익힌 태권도를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며, 미국 이민생활에 뿌리를 내렸고, 마약과 술, 섹스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선도하여, 스승과 제자간에 만난 지금의 자녀들을 가르쳐, 1982년, 최초의 컴퓨터 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1985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여, 하이텍 장비 분야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경상도 깡촌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김 회장은, 가부장제의 전통 시절에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첫 손자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집안 사람들에게, 1946년 정월 초하루, 자시에 첫 딸로 태어난 죄로 ‘재수 없는 년’, ‘집안에 저주스런 년’ 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핍박과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당시 여자에게는 절대적으로 금물이었던 무도를 부모 몰래 삼촌을 통해 익힌후, 그길이 본인의 한 많고 서러운 ‘계집아이’ 로 태어난 죄로 받아야 했던 집안으로 부터의 설욕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김 회장은, 여자란 그저 시집가서 아이 잘 낳고, 살림하며 살다 한 세상을 가야 하는, 어머니가 겪은 똑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과감히 우리나라 오천년 전통을 깨고, 그때 부터 이미 ‘Can Do’ 정신을 이루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 (중앙우측 김태연회장, 중앙좌측 김옥정여사)

기회의 땅 실리콘벨리에서 ‘꿈을 현실’로 만들어 

김 회장에게는 강한 리더십이 돋보인다. 그는 무엇을 원하든지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 실행에 옮긴다. 사업에서 부터 인생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확실하게 실행해 왔다. 이민 초기, 식당과 호텔을 청소하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태권도장을 운영할 때도, 말 할 수없는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정신을 세워 놓고 성취해 나갔다.
나도 할 수 있다는 ‘Can Do’ 정신이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확고 부동한 추진력과 자신감 성취의 열쇠로 무장 되면서,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정신을 유출해 냈다.
올해 68세가 된 그의 왕성한 활동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사업의 확장과 미국 주류사회에 활동으로 눈코 뜰새 없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늘에서 마약과 술, 섹스 등으로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이끌어 모아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 주는데도 시간을 아끼지 않는 그녀는, 지금도, 집을 가출하여 갱단에 소속 되어 갖은 흉폭한 행위를 하던 어린 틴 에이저 들을 선도하여, 그녀의 회사에 부대 시설로 운영하고 있는 ‘정수원’ 태권도 도장에서 수련을 하게 하고, 일부는 그녀의 회사에서 근무하게 하여,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고 있다. 많은 재계 저명 인사들이 자기들의 말썽 많은 자녀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사연이 끊임이 없이 도착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단체에서 강사로 초빙돼 자신의 리더십을 강연하기도 한, 그야말로 24시간이 부족한 맹렬여성이다.
한때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었고, 다섯 시간으로 예정했던 유방암 수술이 열세시간에 걸쳐 받으며, 죽음에 문턱을 경험한 김 회장은, 오늘이 그의 생일이고, 오늘이 결혼식 날이며, 또한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며, 행복은 스스로를 믿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직접 입양한 외국인 자녀 9남 6녀 와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 그녀가 자식들에게 남기는 가르침이 있다. “정직하라, 최선을 다하라. 절대 남에게 의지하지 마라”.

“Be honest, Do your best, You have the power in you, What you do in your life is your personal choice!!!”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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