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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이창현 기자
  • 칼럼
  • 입력 2013.03.20 16:05

이경엽의 낱말산책, '저들만을 위한 우리 낱말'

[월간 금융계 / 이창현 기자]

저들만을 위한 우리 낱말

 

 

미필적고의․향정신성의약품․공황장애․자동제세동기…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 경 엽
현) 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장
1958년 경북 감포
대구상업고등학교/건국대 경영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상학 석사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77년 한국산업은행
도쿄지점 과장/방카슈랑스사업단장
구미지점장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뜻을 종잡을 수 없는 한자말들이 불쑥 나타날 때가 있다. 한자말 공부를 끈기로 즐기는 나도 두 손 들고 싶은 것들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다. 국어사전 세 권을 찾아보았다. ①자기의 행위로 말미암아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 ②확실하지는 않으나 자기의 행동으로 어떤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고서도 그 일을 행하는 심리. 확정적 고의나 과실과는 구별된다. ③불확정 고의의 하나로 결과 발생 자체는 불확실하나 만일의 경우에 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결과의 발생을 부득이하다고 용인하는 심리상태 등등. 미리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전의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낱말이다.

일본의 어느 국어사전을 보니, ‘미필의 고의(未必の故意)’라고 한다. 우리가 쓰는 ‘미필적 고의’의 ‘적(的)’이 일본말에서는 조사 ‘의’로 바뀌어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사전에 예상하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할 때의 의식”이라고 한다. 중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미필고의(未必故意)’로 우리보다 한 글자가 줄어있다. ‘미필적 고의’가 ‘미필의 고의’나 ‘미필고의’보다 뜻이 더 정확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미필의 고의’나 ‘미필고의’가 훨씬 알기 쉽게 느껴진다.

‘향정신성의약품(向精神性醫藥品)’이란 말도 ‘미필적 고의’ 만큼이나 어렵다. “중추 신경에 작용하여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는 의약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어사전을 보니 ‘向精神藥(향정신약)’이라고 한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정신의 상태․기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의 총칭”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정신약품(精神藥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영어 Psychoactive drug이 같은 한자로 번역되면서도 이렇듯 다르다. 어느 나라 번역이 가장 옳은지는 몰라도, 우리 번역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배운 용어 중에 ‘신진대사(新陳代謝)’란 것이 있었다. 이 말이 어려워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은 ‘물질대사’ 또는 ‘물질교대’라는 말로 바꿔 쓰는 것 같다. 어쨌든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섭취하고 불필요한 것을 배설하는 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신진대사’는 ‘신진’과 ‘대사’를 합친 말인데, ‘신진’은 새(新) 것과 묵은(陳) 것을 뜻한다. ‘진’은 묵다․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진(陳)’이란 글자가 좀 어렵다. 이 글자가 들어가는 낱말 중에 가끔 쓰는 것으로 ‘진부’가 있는데 “낡고(陳) 썩었다(腐)”는 뜻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아주(斬) 새롭다(新)는 의미의 ‘참신’이다. ‘참신’에서는 ‘참(斬)’이 좀 어렵다. 그리고 ‘대사’는 서로 갈마드는 것이다. ‘대(代)’는 교대하는 것, ‘사(謝)’는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사는 서로 교대하면서 번갈아 바꾸는 것이다. 신진 곧 새것과 묵은 것을 서로 바꾸는 것이 신진대사다.

요즘 ‘대사증후군(代謝症候群)’이란 용어가 많이 눈에 띈다. 의학에 문외한인 내게 이 낱말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사용을 하고 있으니, 알아두지 않을 수는 없다. 사전의 정의를 빌리면, “내장 주위에 지방이 쌓이고 여기에 고혈당․고혈압․고지혈․고콜레스트롤 등의 증상 몇 개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방치하면 당뇨병․동맥경화․심근경색 등이 올 수도 있는 모양이다. ‘증후군’은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질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몇 가지 증세가 늘 함께 인정되나, 그 원인이 분명하지 않거나 단일이 아닐 때에 병명에 따라 붙이는 명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사’는 앞에서 설명한대로, 신진대사를 가리킨다. 당(糖)이나 지질(脂質) 등의 대사가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겨 당대사이상, 지질대사이상 등의 현상이 발생했을 때 생기는 증후군이 대사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KTX 열차를 타려고 역에서 기다리는데, 이상한 물건이 보였다. 겉에 ‘자동제세동기’고 쓰여 있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심장마비 환자가 생겼을 때 심폐소생을 위한 응급장비인 것은 알겠는데, ‘제세동기(除細動器)’의 뜻을 알 수 없었다. 후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영어로는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인데, 위키피디아를 보니, 일본에서는 자동체외식제세동기(自動體外式除細動器), 중국에서는 자동체외심장거전기(自動體外心臟去顫器)라고 한다. 이 장치는 갑자기 심장이 정지된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응급의료법에 따라서 공공보건의료기관, 구급차, 공항, 객차, 선박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 너무 어렵다. 의학 전문용어로, 세동(細動)을 제거(除去)하는 기구이므로 ‘제세동기’가 정확할지 모르나, 일반인에게 내어 놓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낱말이다. ‘자동심장박동기’ 정도만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련만…. 어쨌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어렵지만 ‘자동제세동기’란 낱말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공황장애’란 말도 요즘 주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않게 나타나는 극도의 공포심이나 불안 증상, 곧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일어나는 질환이라 한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경제공황(經濟恐慌)’이란 말이 먼저 떠올랐다. 恐慌은 갑자기 닥치거나 변한 사태에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황장애는 恐惶으로 쓰는 모양이다. 웃어른에게 송구함을 느낄 때,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공황장애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증세를 가리킨다. 나의 경우, 恐惶이란 말을 사전에서 몇 번이나 찾아보았지만 돌아서면 기억에서 가물거렸다. 잊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恐과 惶을 바꿔보니, 황공(惶恐)이 된다. 이건 좀 듣던 말이다. 사극에서 “전하, 황공하옵나이다”하는 표현이다. 임금 앞에 서니 두렵다는 뜻이다. 恐이나 惶이나 모두 두려움을 가리킨다. “황공무지(惶恐無地)로소이다”는 두렵고 떨려 몸 둘 곳(地)이 없다(無)는 뜻이다.

위에서 예로 든 몇 개의 낱말을 쉽게 이해할 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방면의 전문가들조차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고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방면의 용어를 좀 더 쉬운 낱말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을 의무가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요구일까? 저들만 아는 낱말이 아니라 우리들의 낱말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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