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이보우 편집위원]
만월대 귀환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 로다.
오백 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필자가 언제인가 개성을 찾아가려는 이유는 꼭 만월대를 보고 싶어서다. 고려의 궁궐이 있던 곳이라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칠팔 년 전인가 금강산을 찾아 간 일이 있었다. 산자수려(山紫水麗), 산은 아름답고 물을 맑았다. 봄날이어서 날씨까지 무척이나 화창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즐거움 보다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우선 수속부터가 복잡했다. 기다리는 시간도 무척이나 지루하게 했다. 그 쪽 사람들의 감시하는 듯한 눈 빛도 부담이었다.
예정된 코스 외에는 산 어디에도 자유는 없는 숨 막히는 계곡뿐이었다.
개성은 그렇지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필자는 갖고 있었다. 군 부대가 멀리 후방으로 이전되었고 자본주의가 실험이 되는 곳이니 만치 ‘자유롭게’ 만월대를 찾을지 모른다는 믿음에서다.
그런 믿음은 아마도 개경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지 않을까 한다. 고려는 원나라의 힘에 못 이겨 강화로 수도를 옮겨갔지만(1232년), 40여 년이 지나지 않고 다시 개경, 만월대로 귀환(1270년)했었다. 원이 세계적인 제국이 되면서 이룩된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 조공을 하고 독립국으로 살아가는 당시의 범 아시아적 외교전략을 편 것이다. 해가 갈수록 쑥대밭으로 변해가는 강토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거니와 풀 뿌리와 나무껍질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거두어야 하는 왕업이 더 중차대하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수세기의 세월이 지나갔으나 백성을 먹여 살리고 더 잘 살게 하는 일이 왕업(政府)의 첫째 소임이다.
개성공단의 우리 기업인들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개경으로 귀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의 백성들이 생업이 다시 종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은둔 문사(隱遁文士) 원천석은, 망국의 서러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일국의 흥망은 하늘의 뜻(有數)이지만 왕업을 그르치면 화려한 만월대에는 잡초(秋草)들만 무성해진다는 역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