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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월간금융계
  • 칼럼
  • 입력 2013.05.06 13:31

[칼럼]이보우 편집위원, 만월대 귀환

[월간 금융계 / 이보우 편집위원]

만월대 귀환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 로다.
오백 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이보우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중문학과
베이징대학 경제학 박사
외환은행
여신금융협회상무이사
(현) 단국대 경영대학원 신용카드학과 교수
(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한국신용카드연구소 소장
한국신용카드학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개성을 한 번 가 볼까 했는데 아무래도 희망이 가깝지는 않은 것 같다. 어찌 돌아가는 형국이 영 심상치가 않다. 거기서 일 하던 사람들이 잠시 남으로 내려와 자리를 비운 것이라 하지만 상대가 실질적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가라는 데 지금으로서는 당장 들어갈 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언제인가 개성을 찾아가려는 이유는 꼭 만월대를 보고 싶어서다. 고려의 궁궐이 있던 곳이라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칠팔 년 전인가 금강산을 찾아 간 일이 있었다. 산자수려(山紫水麗), 산은 아름답고 물을 맑았다. 봄날이어서 날씨까지 무척이나 화창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즐거움 보다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우선 수속부터가 복잡했다. 기다리는 시간도 무척이나 지루하게 했다. 그 쪽 사람들의 감시하는 듯한 눈 빛도 부담이었다.
예정된 코스 외에는 산 어디에도 자유는 없는 숨 막히는 계곡뿐이었다.

개성은 그렇지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필자는 갖고 있었다. 군 부대가 멀리 후방으로 이전되었고 자본주의가 실험이 되는 곳이니 만치 ‘자유롭게’ 만월대를 찾을지 모른다는 믿음에서다.
그런 믿음은 아마도 개경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지 않을까 한다. 고려는 원나라의 힘에 못 이겨 강화로 수도를 옮겨갔지만(1232년), 40여 년이 지나지 않고 다시 개경, 만월대로 귀환(1270년)했었다. 원이 세계적인 제국이 되면서 이룩된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 조공을 하고 독립국으로 살아가는 당시의 범 아시아적 외교전략을 편 것이다. 해가 갈수록 쑥대밭으로 변해가는 강토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거니와 풀 뿌리와 나무껍질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거두어야 하는 왕업이 더 중차대하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수세기의 세월이 지나갔으나 백성을 먹여 살리고 더 잘 살게 하는 일이 왕업(政府)의 첫째 소임이다.
개성공단의 우리 기업인들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개경으로 귀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의 백성들이 생업이 다시 종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은둔 문사(隱遁文士) 원천석은, 망국의 서러움을 노래하고 있지만 기실 일국의 흥망은 하늘의 뜻(有數)이지만 왕업을 그르치면 화려한 만월대에는 잡초(秋草)들만 무성해진다는 역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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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ton 2015-02-05 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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