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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이창현 기자
  • 칼럼
  • 입력 2013.05.06 14:06

이경엽의 낱말산책, 숫자 이야기

[월간 금융계 / 이창현 기자]
 

숫자 이야기

 

국어사전에 나오는 가장 작은 수와 가장 큰 수는?
천문학적 숫자는 어떤 수?

                         이 경 엽
현) 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장
1958년 경북 감포
대구상업고등학교/건국대 경영학과
일본 게이오대학 상학 석사
경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1977년 한국산업은행
도쿄지점 과장/방카슈랑스사업단장
구미지점장
수와 숫자는 어떻게 다를까? 한 국어사전을 보니, 수(數)는 셀 수 있는 물건의 많고 적음이라 하고, 숫자(數字)는 수를 나타내는 글자라고 한다. 1․2․3 등은 아라비아 숫자고, 一․二․三 등은 한자 숫자다.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는데, 아라비아인이 인도에서 받아 들여 중세 유럽에 전했다. 그래서 아랍세계에서는 아라비아숫자를 ‘인도숫자’로 부른다고 한다.

한자 숫자는 一․二․三․四․五․六․七․八․九가 있고, 영(零)은 동그라미(○)로 나타낸다. 한자 숫자는 획을 더해 변조할 가능성이 있어, 특히 금액을 나타낼 때에는 갖은자를 주로 쓴다. ‘갖은자’는 원래 글자보다 획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갖은자에는 壹(一)․貳(二)․參(三)․肆(四)․伍(五)․陸(六)․漆(七)․捌(八)․玖(九)․拾(十)․仟(千) 등이 있다.

그러면 수는 어느 정도까지 나타낼 수 있을까? 대수(大數) 곧, 일보다 큰 숫자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일․십․백․천․만․억․조․경․해․자․양․구․간․정․재․극․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수까지 나온다. 처음 보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극’보다 높은 수는 주로 불전(佛典)에 나오는 말이다.

항하사(恒河沙)는 ‘항하의 모래’라는 뜻인데, 항하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가리킨다. 요즘 ‘강가(Ganga)'라는 인도음식점이 눈에 가끔 띄는데, 강가는 갠지스강을 상징하는 여신이며 또한 갠지스 강의 힌디어 이름이라고도 한다. 아승기(阿僧祇)는 범어 asamkhya에서 온 말로 무수(無數)하다 곧 셀 수가 없다는 인데, 불교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수나 시간을 뜻한다.

나유타(那由他) 역시 범어 nayuta를 음역한 것인데, 지극히 큰 수량이란 뜻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는 글자그대로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이 역시 지극히 많은 수를 뜻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이다.

무량수(無量數) 역시 측량할 수 없이 한없이 많은 수를 뜻한다. 그러나 영주 부석사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의 무량수와는 다르다. 무량수전은 무량수는 無量壽로 한없이 오랜 수명을 뜻한다.

이들 숫자를 표로 만들어 보았다.

1

10

102

103

104

108

1012

1016

1020

1024

1028

항하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

무량수

恒河沙

阿僧祇

那由他

不可思議

無量數

1032

1036

1040

1044

1048

1052

1056

1060

1064

1068

제를 하나 내어 보자. 1072-1은 얼마일까? 답은 9,999무량대수 9,999불가사의 9,999나유타 9,999아승기 9,999 항하사 9,999극 9,999재 9,999정 9,999간 9,999구 9,999양 9,999여 9,999해 9,999경 9,999조 9,999억 9,999만 9,999이다.

대수와는 반대로 일보다 적은 숫자 곧 소수(小數)도 있다.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0-10

10-11

모호

준순

수유

순식

탄지

찰나

육덕

허공

청정

模糊

浚巡

須臾

瞬息

彈指

刹那

六德

虛空

淸淨

10-12

10-13

10-14

10-15

10-16

10-17

10-18

10-19

10-20

10-21

대수의 경우에는 만 이상은 만 배씩 늘어나는데, 소수의 경우에는 10분의 1씩 줄어들고 있다. 소수 역시 듣도 보도 못한 글자들이 있는가 하면, 모호․순식․찰나․허공․청정 등 꽤 익숙한 낱말도 보인다. 탄지는 손가락 한 번 튀길 정도란 뜻인데, 마이너스 17승은 좀 과장인 듯도 하다. 청정수역, 청정무구, 청정재배 등 ‘청정하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데, 불순물의 크기가 10-21이란 것을 보니 청정하다고 말하기가 두려워진다.

‘천문학적(天文學的) 숫자’란 천문학에서나 다루어지는 숫자와 같이 엄청난 숫자를 말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현실 생활과는 동떨어진 큰 수치나 금액을 의미한다. 천문학에서 다루는 숫자는 기본이 광년(光年)이므로 아주 크다. 1초에 지구를 몇 바퀴나 돈다는 빛이 일 년이나 걸려 다다를 수 있는 거리가 ‘광년’이니, 사실 ‘천문학적’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낀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천문학적’이란 말은 꽤 자주 쓰인다. 아니, 남용되는 느낌이다. 원래의 말뜻을 생각하면 아무 곳에나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천문학적’이라는 낱말을 사용할 때, 한 번쯤 ‘우주’를 상상해 보면 말뜻의 크기가 실감날지 모를 일이다.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천문학적 숫자’에서 ‘숫자’라는 글자를 떼고 단지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통용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는 ‘천문학적 숫자’ 또는 ‘천문학적 규모의 숫자’라고 하는 것이 옳다. 물론 말이 길어지기는 하겠지만. 예를 들면, ‘천문학적 금액’은 ‘천문학적 숫자의 금액’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습관적으로 또는 잊고 ‘숫자’란 말을 생략한 경우에도, 원래는 ‘천문학적 숫자’라는 생각은 가져보자.

한자 수(數)에 대해 일본의 한문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은 이렇게 해석하였다. ‘별이름 루(婁)’와 ‘칠 복(攴)’으로 되어있는데, 婁는 여자가 머리를 높이 말아 올린 모양이라고 한다. 이를 쳐서 모양을 헝클어 놓은 것이 數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책하는 행위였기에 책망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져서 셀 수 없는 상태가 되므로 수․헤아리다는 뜻이 되었고, 수를 세는 방법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기에 명수(命數) 곧 운명과 재수 등의 뜻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에게 있어서 운명과 재수는 모두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나이가 그렇고, 재산이 그렇듯 모두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 행동의 대부분이 십진법이란 계산방식 속에서 규제당하고 있다. 지금은 이진법이란 지극히 단순하고 간단한 계산규칙이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세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지배당하는 것이 그렇다. 이렇게 볼 때, 수는 우리의 명수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학설이나, 동양의 철학이나 이 점에서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팍팍한 우리의 삶에도 무슨 좋은 수(數)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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