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금융계 / 이보우 편집위원]
이 땅의 레미제라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명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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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제창을 주장하던 측에서는 제창 거부는 5.18역사를 부정하고 그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라 하기도 한다. 상당기간 제창으로 하였는데 구태여 이를 막을 이유가 없다고 한다. 노래를 하는 형식에 따라 역사 자체가 부정되거나 왜곡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사는 사실이니 만치 흔적을 임의로 지우거나 지워지지는 않는다. 제창이던 합창이던 적절한 절차에 따른 형식이니, 필요하다면 바꿀 수는 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올해는 그냥 지나갔다 하더라도 내년 또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숙제다. 어느 한 쪽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영원히 평행선이며 반쪽기념이 연례행사가 될지 모른다. 자체에 기념하는 곡으로 지정이 필요한지도 생각하여야 할 일이다.
이 행진곡 논란은 최근의 어느 문인들 협회에서 발행한 ‘사람’이라는 시문집과도 맥을 같이 한다. 시문집은 근대 사에서 족적을 남긴 저명인사 100인을 선정하여 시어(詩語)로 공적을 기린 것이었다.
이 책이 발간이 되자 마자 일부의 ‘젊은 시인’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 광복 후 나라를 세우거나 천 년의 가난을 이겨 낸 지도자들을 일방적으로 미화되었다면서 비운의 노 전 대통령이 선정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 중의 하나로 읽힌다.
협회는 서둘러 이들 서적을 전량 회수했다.
이 시대는 국민통합과 행복이 테마이다.
노래 한 곡 때문에 국가행사를 반 토막이 되거나, 소수의 소리가 멀쩡히 기획된 시집이 분서(焚書)되는 사회는 통합은 멀다. 물론 소수 의견도 흘리지는 않아야 한다. 다만 다수의 행복을 얼룩지게 하는 색상이라면 미세한 한 방울이라도 지워지는 게 옳다.
마침 ‘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가 이 노래를 빌어, 민주화 운동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겠단다. 그의 말대로 이 행진곡은 ‘빨갱이들이 부르는 노래라던가 애국가를 대신하는 노래라는 양극단 평가는 부적절’하다. 그저 이 곡으로 오늘을 있게 한 역사와 가슴저린 사랑을 이 장엄하고 아름답게 흘렀으면 한다. 빼어난 뮤지컬로 되어 우리들 마음간의 틈새를 메우고 함께 화합하고 어우르게 하는 자양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위고(Hugo)의 레미제라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