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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월간금융계
  • 칼럼
  • 입력 2014.09.12 15:30

어찌, 응징하랴 ?! 구전문사(求田問舍)의 탐욕에 빠진 은행계라니...!

[월간 금융계 / 박완규의 돈파파라치]

 

‘이제 다만 이 마음을 뉘라 알아줄 것인가. 진등의 백 자 높은 다락에 높직이 누웠노라. (祗今心跡誰能辨 高臥元龍百尺樓)’
고려말기의 충신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중국 후한 때 사람인 진등(陳登)의 절개와 지조를 흠모해 지은 ‘밤비(夜雨)'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후한(後漢) 말기 광릉태수를 지낸 진등은 엄격한 법집행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하루는 허사(許汜)라는 친구가 찾아와 땅과 집을 사는 일 따위를 묻는지라, 진등은 변변찮은 그의 사람됨을 아는 지라 대꾸하지 않았다. 이어 밤이 되어 잠자리를 봐 주었는데, 진등은 허사를 침상 아래에서 자게 하니, 두고두고 앙심을 품었다.
훗날 유표(劉表) 밑으로 들어간 허사는, 어느 날 유비(劉備)와 천하의 인물을 논할 때 진등 이야기가 나오자 과거의 일을 들춰내며 비방해댔다. 이에 유비는 “황제조차 거처할 집이 없을 정도로 세상이 어지럽거늘 나라를 구함에는 유의치 않고, 땅과 집에만 관심을 보이는 너 같은 자를 침상 아래에 재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며 허사를 나무랐다.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전답(田畓)과 가옥을 사려고 묻는다’는 구전문사(求田問舍)인데, ‘자기가 부칠 논밭과 살림할 집을 구하는 데에만 마음을 쓸 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대사(大事)나 대의(大義)를 지니지 못함'을 일러 꼬집는 말이다.

기준금리 인하 비웃는 은행계 잇속 챙기기
시중은행들의 구전문사 행태의 장삿속이 도를 넘어섰다. 너무 빈번하게, 너무도 태연하게 이뤄지는 기만과 전횡에 소비자들은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서민들을 울리는 은행들의 이자놀음은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조차 감탄할 정도니, ‘불신’과 ‘탐욕’이란 낱말이 작금의 은행을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연 2.25%로 0.25% 포인트 인하하자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를 줄줄이 내렸다. 기준금리가 낮아졌으니 자금중개기관인 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예금금리는 ‘왕창’ 내리면서도, 대출금리는 ‘찔끔’ 시늉만 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농협과 우리은행 같은 토종 은행을 비롯해 한국씨티, 스탠다드차타드 등 외국계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를 기준금리 인하폭보다 많은 0.3~0.4%씩 내렸다. 기준금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우대금리도 내리는가 하면, 뻔뻔스레 자동이체 및 입출금 수수료 면제 등 고객 혜택까지 줄였다.
우리은행의 기업AMA통장의 경우 기존 연 1.5∼2.2%에서 연 0.3%로 무려 1.2∼1.9% 포인트나 낮춰 다음 달부터 적용키로 했다. 우리잇통장 금리도 연 2.0%에서 0.3%로 1.7% 포인트 낮추는 등 대부분 상품의 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췄다. 은행에 돈 넣어둬 봤자 세금 떼고 나면 손에 쥐는 이자가 거의 한 푼도 없게 생겼다.

코픽스 체계를 무력화시킨 대출금리 인하폭
정작 혜택이 돌아가야 할 대출금리도 인하는 했으되 내렸다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다. 주택담보대출은 신한은행이 ‘금리안전모기지론’ 금리를 기준금리 인하 폭과 같은 0.25% 포인트 내렸을 뿐 나머지 은행들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이용되는 코픽스(COFIX·cost of funds index) 연동대출 금리를 고작 0.02∼0.09% 포인트 내리는 데 그쳤다.
은행들은 시장금리 변화를 반영해 대출금리와 예·적금 금리를 결정했다고 항변하지만 대출금리와 예·적금 금리 인하폭이 이렇게 차이 나서야 어디 변명이 먹힐 수 있겠는가. 백번 양보해 저금리 지속으로 예대 마진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금리 변화는 동일하게 적용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시중은행이 대출금리 인하에 인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대출금리에도 즉각 반영하게끔, 은행연합회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코픽스 체계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업환경 악화는 금리 조정 방식이 아니라 수익의 80%를 예대 마진에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은행들은 그동안 기존의 영업방식에서 탈피해 수익구조를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했지만 변한 게 없다. 그나마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낮아지면 예대 마진 하락폭이 고작 0.02%포인트 정도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에 빗대면 금리인하로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는 은행의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경기회복 위한 조치가 은행 배만 불린 꼴
금리 인하의 혜택이 기업과 개인에 돌아가지 않고 은행의 배만 불리는 형국일진대, 이러면서도 서민금융이네 뭐네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뭉스럽다. 가계 대출은 1000조 원을 넘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기에, 한국은행은 기업과 서민의 금리 부담을 줄여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려고 금리를 내렸건만 은행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의 이자놀음으로 잇속 챙길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정부가 최대 주주이고, 농협은행도 정부 지원을 받는 농협중앙회가 주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내 은행들이 실력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 지원해 수익성을 높이는 창조금융을 활성화시키지 못한 채 손쉬운 예대마진 챙기기에만 급급한다고 수차례 비판했다. 지난달과 이달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잇따라 ‘금융권 보신주의’를 강하게 질타했지만 은행계 현장은 요지부동이다.
은행들은 불황기에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만 늘리는 얌체 영업을 일삼으면서도 자신들 이익단체의 도덕적 해이에는 한없이 관대했다.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전국은행연합회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임원 출장 때 배우자의 여행비까지 지급했다. 시간외수당과 연차수당을 더 많이 챙겨주고, 공직선거에 나가는 직원에겐 3개월의 유급 휴직을 주는 등 25개 사항이 지적됐다.
소위 모피아(기획재정부+마피아)들의 ‘쉼터’에 다름 아닌 은행연합회는 회장 연봉이 무려 7억3,500만 원에 이른다. 시중은행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연합회가 물처럼 펑펑 쓰는 돈은 결국 금융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나온 것이다.


‘금융권 보신주의’ 타파와 응징이 마땅하거늘
은행들이 예대 마진을 통해 수익을 챙기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대출금리를 천천히 더 적게 내리고, 기준금리가 올랐을 때는 재빠르게 더 많이 올려 잇속을 챙겨왔다. 은행들이 시장금리 변화에 따라 영업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신상품 개발이나 수익사업 개발에 소홀한 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예대마진에 치중해 지속적으로 서민들의 등을 쳐서 배만 불리려는 보신주의 구태는 단연코 타파돼야 한다.
은행들은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비롯해, 잦은 고객돈 횡령 사건이나 금리담합 사건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저금리시대에 갈 곳 없는 돈들이 은행으로 밀려든다고 해서 배짱 영업으로 일관하다간 한순간에 외면당하며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위기 땐 국민 지원으로 살아남은 은행들이지만 정작 금융소비자들이 필요할 때는 외면해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은행의 보신주의를 질타하며 기업 대출을 독려하는 것은 시장주의에 반하는 것이긴 하지만, 비 올 때 우산 뺏어가며 제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은행들의 구태를 떠올리면 문제삼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금융소비자들의 불신이 한계에 달하기 전에 은행 스스로 금리를 재조정해야 마땅할진대, 박경리는 작금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대하소설 토지(土地)에서, 경제난국에도 아랑곳 않고 뻔뻔스레 탐욕과 보신주의 빠진 시중은행들을 향해 질타를 날린다.
"한심하지 한심하여.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벼슬아치들은 구전문사(求田問舍)하고 상것들은 구전성명(苟全性命)에 급급하니 누가 나서서 원수를 막을 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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